한국인에게 당황스러운 베트남 문화

 

한국은 이혼하고나면 배우자의 가족이나 친척들과는 남남이 된다. 그러나 베트남은 그렇지 않다. 이혼후에 변한것은 부부관계 청산뿐이고, 그 외의 관계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처럼 배우자와 배우자 가족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도  그 수위가 한층낮다.

 

나에게 처음으로 베트남어를 가르쳐 준 티교수는 아내와 함께 한 직장에 다니다가 이혼을 했다. 부부가 한 직장에 다니는 것도 한국인에겐 어색한 일인데 하물며 이혼을 하고도 여전히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우리가 더 어색해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

하루는 티교수가 아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서 수업을 쉬자고 하는데 아내를 버꾸우(vo cu) 라고 하는 것이다.

 

버 vo 는 아내이고 꾸우 cu 는 옛古를 뜻하는 단어이므로 지금 티교수는 옛아내의 아버지 장례식에 간다는 말을 한 것이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버꾸우라면 혹시 선생님께서 이혼한 흐엉선생님을 말하는 것이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이혼을 했는데 왜 가는가? 하고 물었더니, 이혼은 아내랑 한것이지 장인이랑 한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다시, 아내로 인하여 맺어진 가족관계는 아내와 헤어지면 그만 아닌가? 라고 했더니 티교수는 발끈하며 장인장모도 부모인데 어떻게 부모의 관계를 아내와 이혼했다고 끊어버릴수 있겠냐는 것이다.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장인 장모가 아플 때도 찾아가고 집안의 경조사가 있을 때도 찾아 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의 경우 이혼하면 대게 남남으로 살며 연락하기를 꺼려하는 우리와 비교할 때 베트남의 문화는 인간적인 정이 더 살아있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베트남의 문화를 모를 때 텀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었다. 텀의 남편은 독일에 돈 벌러 갔다가 거기서 다른 베트남 여성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도 텀은 그 남편의 부모와 함께 살면서 시부모님을 봉양하고 있었다. 텀이 바보 였다면 모자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 했을 텐데 텀은 총명한 여자였다.

 

그래서 더욱더 텀의 행동이 이해가 안되었다. 착한 텀이 시부모님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아 틈만 나면 텀에게 독립해서 너의 살길을 준비하라며 조언 아닌 조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왜 베트남 사람들은 이혼 후에도 우리처럼 두부 자르듯이 관계를 싹둑 자르지 않고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는 걸까? 이상해서 물어 보았더니 베트남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이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부가 이혼했으면 했지, 왜 주변의 관계까지 청산해야 하는가?라며 한국문화가 너무 비정하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심정적으로 제일 힘든 부분이 이혼 후에 양가집이 원수가 되는 것과 양가집 어른들의 사이가 안 좋아지면 결국 신랑,신부가 헤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베트남과 비교해 볼 때 지나치게 비생산적인 관계중심의 사회인 것 같다.

베트남은 이혼후에 자녀들이 부모를 만나는 것도 우리보다 훨씬 자유롭다. 티교수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이혼한 아내가 기르고 있다. 그런데 가끔씩 이 딸이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 오는 것이다.

 

티교수의 집에는 지금의 아내가 데리고 들어온 두 딸이 있어서 마주치면 썩 좋은 감정은 아닐 것 같은데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새아버지를 찾아온 새아버지의 친딸을 맞이한다. 우리 식으로 해석을 하자면 친딸의 입장에서는 자기 아버지를 뺏어간 여자의 딸들이 아닌가, 미워하려면 얼마든지 미워할 수 있는 관계이다.

 

얼마 전에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웃어라 동해야" 에서도 도진이가 자기 아버지가 자기 엄마와 결혼 전에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동해를 형으로 인정하기 싫어서 그렇게 미워하는 것을 보더라도(이것이 한국문화인지, 아니면 작가가 과장을 하는 건지 혼동이 되기는 하지만) 한국은 순혈주의적 경향이 짙은 사회이다.

 

반면 베트남은 부모 중에 한쪽의 피라도 공유하면 친형제로 인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을 보면서, 혈통중심주의적 사고로 타인에 대해 배타성이 강한 우리보다 훨씬 수용력이 넓은 민족인 것을 알 수 있다.

 

왜 베트남은 이혼 후에도 배우자의 부모를 비롯하여 주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걸까?

 

이것은 얼핏 서구의 문화와 비슷해서 혹시 프랑스 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프랑스가 베트남을 19세기에 100년 동안 식민통치). 보통 사람들은 베트남문화에서 서구문화와 비슷한 요소가 보이기만 하면 급하게 프랑스를 떠올리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다. 문화의 속성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어서 전혀 상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경우는 베트남 문화 가운데서도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베트남의 문화를 몇개의 키워드로 정의할 때 정감情感을 빼 놓을 수 없다.

 

출처: 굿모닝 베트남 / 글: 김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