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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대 원예학과 김진국(76) 석좌교수가 지난 5일 하노이에서 제 3회 세계한인의 날을 맞아 | |||||||
|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임홍재 주베트남 대사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 |||||||
|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한국과 베트남간의 관계 발전에 | |||||||
|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 |||||||
| 한국인 최초로 달랏에 정착해 농업선구자로서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가르쳐온 김교수는 | |||||||
| 베트남 최고의 난(蘭) 연구가이자 70이 훨씬 넘은 고령에도 학생을 가르치는 현역교수다. 또한, | |||||||
| 그는 화훼류를 생산.판매하는 '㈜농산'의 회장이기도 하다. | |||||||
| 하지만 김교수가 달랏 사람들에게까지 파파킴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는 이유는 현지 농민들에게 | |||||||
| 비닐하우스 기술을 보급, 소득을 급성장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 |||||||
| 학생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그는 또 달랏대와 한국의 여러 대학을 연결시켜 한-베 학술교류를 활성화 시키고 베트남을 | |||||||
| 한국에 알리는 '베트남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부산고와 동아대를 졸업한 김교수는 63세 때인 | |||||||
| 지난 1994년 대구가톨릭대 원예학과 교수직에서 물러나 달랏에 들어왔다. | |||||||
| 그리고 비닐하우스 보급에 나선지 15년. 거기서 시작된 비닐하우스가 이제는 달랏 일대에서 | |||||||
| 숲을 이루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그의 공로를 인정, 김 교수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준 외교관 | |||||||
| 비자도 내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