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한겨레-

뜻하지 않은 기회에 베트남의 굿판에 갈 기회가 생겼다.  하노이인문사회과학대학교 대학원생들 몇몇과 관련 전공교수와 같이 찾은 길이었다.  무당은, 남자였으며 춤을 주로 춘다고 했다.  나는 얼핏 우리의 하얀 춤을, 살풀이를 떠올렸다.  어디서나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닮은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 가장 밑바닥, 민초들의 애환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 굿판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하물며, 쌀밥과 야채를 주식으로 하는 우리와 닮은 문화적 특성이 많은 베트남에서는, 그 무(巫)의 성격도 비슷하리라 여겨졌다.  

  베트남은 다양한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국가다.  소수민족들은 저마다 주술을 행하는 무당이 있다.  그리고 평야지대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각 마을마다 사당을 가지고 있다.  이 사당은 여러가지 기능을 한다.  동네의 크고 작은 경조사를 비롯하여 마을의 회의를 열기도 하고, 우리의 경로당과 같은 구실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국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원들이 단골로 등장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각 마을의 직접적인 안녕만을 기원한다.  직접, 마을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그런 기능을 한다.  어쩌면 나라의 안녕은 개인의 행복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는 공업화 현대화에 따라, 무(巫)는 미신이 되어 사라져가야 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더 염격하게, 당연히 사라져야 할 것임에도, 무는 마을마다 존재한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그보다 앞선 민족적 전통과 문화가 꾸준히 마을단위로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런 마을문화가 먼저 기초가 되고, 그 위에 사회주의가 온다.  그 사이에서 엄격한 사회주의노선의 지도자들과 민족적사회주의노선의 지도자들 사이에 갈등이 노출되기도 한다.  호찌밍의 이 한마디는 정확하게 베트남 사람들의 태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Chính lòng yêu nước, chứ không phải lý tưởng cộng sản, là nguồn cảm hứng cho tôi. 

   공산주의 이상이 아니라,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내 열정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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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처럼 공부하는 사람에겐, 그 굿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것이 흥미로운 관심거리중 하나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무당이라는 존재의 역할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관찰거리에 속한다. 

   하지만 이번 굿판은, 베트남에 온 후로 처음 접하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욕심을 낼 수는 없었다.  그저 베트남 문화의 한 측면을 엿본다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물어 물어 찾아간 마을은, 하노이에서 30여킬로 떨어진 곳이었으나, 시간으로는 2시간이 더 걸렸다.  조금만 하노이를 벗어나도 느껴지는 가난은 이제 익숙해질만도 한데, 아직도 마음이 절여 온다. 

   도착했을때, 예상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1년동안 무사히 지내온 것을 신에게 감사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1년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종시(終始)의 순간으로, 마을 사람마다 안좋은 일이 있다면 풀어내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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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사는 남자들뿐이었는데, 빠르거나 느리게를 반복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었고 계속적인 고음을 사용하였다.  조금은 구슬픈듯 하면서 물흐르는듯 흐르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철저히 춤을 추는 무당의 행위에 소리는 뒤따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당의 행위도 끊어지는 것이 없이 살짝살짝 이어졌다. 

   춤을 추는 무당의 행위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면, 딩당딩당거리는 본격적인 악기의 연주가 시작된다.  모든 악기들은 최고조를 달리고, 북과 설쇠와 비슷한 무구가 함께 연주되고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하지만, 대부분 몇종류의 피리와 사진에 보이는 두개의 현악기와 사람의 소리가 거의 모든 굿판을 더듬는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타악기가 연주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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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이한점은 제주도의 굿에서만 보이는 설쇠와 아주 닮은 무구가 이곳에서도 사용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무당의 춤이 최고조에 이를 때 비로소 이 설쇠가 두들겨지는데, 제주도의 리듬과 같다.  이곳에는 설쇠의 종류가 몇가지가 되었는데, 엎어놓고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놓고 두들기는 것이며, 소리와 리듬은 제주도의 것과 같았다.  그 외에도 좀 작은 소리를 내면서 설쇠와 비슷한 것은 쟁반처럼 얇은 것인데 엎어놓고 두들긴다.  북은 큰북이 따로 있고, 이렇게 자그마한 북을, 제주도의 굿판에서와 똑같은 방식으로 놓고 두들긴다.  손으로 들고 치는 징과 꽹과리는 없지만, 비슷한 형태의 것들이 나름대로 두들겨진다.  대나무를 쪼갠 악기도 보인다. 

   신을 부를 때는 종종 매달린 청동종이 이용되는데, 사당에 가서 신에게 절을 할때도 종을 쳐서 신에게 알린다.  무당이 사뿐하게 신에게 삼배를 할 때, 종도 절을 따라 세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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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북은 거의 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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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으로 무당이 신 앞에 앉았다.  하얀 옷을 위아래로 입었는데, 가장 먼저 빨간 덧버선을 신고, 그 다음 처음으로 노란색 도포를 입는다.  옆에서는 두명의 사람이 무당의 치장을 돕는다.  뒷편에 두명도 앉아서 무당의 옷자락을 손보거나 보조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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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으로 굿이 시작됨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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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신을 할때는 반드시 이렇게 얼굴을 가린다.  그 안에서 비로소 신과 무당만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뒤돌아서면 무당은 사람들에게 신으로서의 행위를 보인다.  무당은 말이 없고, 대신 표정과 행위로서 인간과 만난다.  우리의 무당과는 다른 점이다.  신과 인간의 경계가 보인다.  어쩌면, 베트남 사람들은 신을 그저 신의 영역에 두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일이다.  제 나름대로 풀어내면서 사는 방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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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신을 맞이한 무당이 춤을 춘다.  가장 높은 신부터 내림을 받는데, 그 신은 위에서 그저 이 자리를 허락할 뿐이다.  두번째 신부터는 점차 행위가 더해진다.  

  신을 맞이하는 과정은 의외로 단순했다.  애써 찬양하면서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당이 그 신의 가면(character)을 쓰면 그만이다. 

   이 남자무당은 사설없이 춤만을 춘다.  행위를 통해 인간과 교감하려 한다.  사설은,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노래와 어울어져서 무당과 분리되어 한편에서 연주된다.  하지만, 무당은 종종 자신의 느낌을 그 노래부르며 연주하는 사람들과 교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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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예쁘게 치장한 무당이 불춤을 춘다.  불이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  베트남이 물의 나라여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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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번째 가면은, 입술을 빨갛게 칠한 여신인 모양이었다.  베트남사람들이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신들은 여신들이다.  하노이의 푸떠이호에도 산신으로 여신이 모셔져 있다.  직접 민초들을 어루만져주는 신들은 어김없이 어머니와 같은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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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신마다 사람들에게 베푼다.  돈많은 사람들이 돈을 올리고, 종종 작은 돈을 접시에 담아 올리는 사람에겐 돈을 더 얹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되돌려 주기도 한다.  관계자(?)만 올라선 조그만 무대기둥에 바짝 붙어서 사진을 찍는 내게 건네주는 복(福).  눈길을 마주치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  내게 건네는지 모르고, 사진만 찍는 내게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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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당의 근처에 앉았다가, 무당이 주는 복(福)인 담배를 피는 아주머니.  이곳 사람들에게 복의 개념은 이 담배와도 같다.  신에 의해서 금기가 허락될 수 있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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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학생의 ‘인연끊기’가 있었다.  살풀이인 셈이다.  지난 생에서부터 비롯된 인연의 끈이 지금도 살아가는 젊은 학생에게 그 그늘을 드리운 모양이다.  왼편과 오른편으로 나뉜 것들 사이로 한가닥 실이 놓여져 있다.  옆에서 거드는 사람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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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를 덮어 쓰고 앉은 학생의 머리 위에서 행해지는 인연끊기.  이 굿판에서 가장 긴장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계속 촬영되던 비디오카메라도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한다.  다행히 나는 괜찮은 모양인지 그냥 두었다.  무당이 가위를 들고, 인연을 잘라낸다. 

   우리 한국인은 귀신이어도 달래고 풀어내어 보낸다.  그 과정이 참으로 정성겹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신의 명령을 받은 무당이 바로 잘라낸다.  그 자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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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칼을 양손에 들고 춤을 추는 무당.  상당히 많은 신들이 모셔지는데,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주위의 사람들에 따르면, 높은 신으로부터 낮은신으로 쭉 모셔지게 된다고 한다.  몇시간동안 이어지는 이런 신들의 모심은, 한편은 지루하다.  옷의 색깔과 머리의 장식, 옷에 새겨진 상징들과 손에 드는 무구들의 종류는 다르지만, 구경꾼에게는 거의 비슷한 내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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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웠다.  몇시간을 보았지만, 아직 몇몇 신을 더 불러들여야 비로소 굿판이 펼쳐질 것이었다.  대학원학생들이 가자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손님처럼 붙어 온 나는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일어서서 나서자니, 자꾸 뒤돌아보게 되었다. 

   높은 신에게 낮은 신으로 내려올수록 무당은 점차 새와 뱀 모양의 느낌을 만들어냈다.  계속 담배를 피우고, 쩌우까우를 씹어서 입을 붉게 물들였다.  낮은 신일수록, 인간에게는 더 가까운 신이다.  더 많은 지폐를 모인 사람들에게 뿌린다. 

 

   신과 인간이 하나되기 보다는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 중재자인 무당은, 철저히 중재자이다.  인간의 편에서 신에게 기원하고, 신의 입장에서 인간을 달래는 그런 역할이 아니라, 무당은 신이 된다.  그 앞에서 인간은 직접 자신의 소원을 전하고 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무(巫)는 베트남 북부사람들에겐 일상적이다.  큰돈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며, 전적으로 그것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언젠가는 소수민족의 굿판을 봐야 겠다는 마음이 돋아났다.  베트남도 슬픈 원혼들이 많은 땅이 아니던가.

 

출처 원문:  http://blog.hani.co.kr/sanbang7/3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