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거리의 낭만을 싣고 달리는 시클로 ( 베트남 )

한 줄기 스콜이 강하게 거리를 쓸고 나간 오후, 흥건한 아스팔트 위가 투명한 물빛을 반짝이는 거리를 시클로(cyclo)가 천천히 미끄러지는 풍경은 가장 베트남적인 풍경화 가운데 하나다. 베트남 정부에서 발행하는 국가 홍보물의 한 페이지 정도는 시클로가 차지할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운송수단인 시클로는 뜨거운 남국의 태양을 온통 몸으로 받아내며 달리는 베트남 도시 서민들의 애환이 진하게 묻어 있으며 비교적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s21571.jpg 시클로는 자전거의 앞바퀴가 있던 자리에 수레처럼 두 바퀴와 의자를 설치하고 뒤에서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삼륜 자전거다. 어린이들이 타는 세 발 자전거를 거꾸로 놓고 보면 그 구조를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동남아의 다른 국가에도 시클로와 비슷한 운송 수단이 있는데 대부분 자전거 뒷바퀴를 떼어내고 뒤에 승객의자를 달아 앞에서 끄는데 반해 베트남 시클로는 운전자가 뒤에서 운전하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이런 독특한 구조 때문에 승객들이 직접 시클로를 몰고 거리를 질주하는 듯한 착각을 선물할 만큼 개방감을 지닌 시클로다.

자전거를 조금 탈 줄 아는 사람이 언뜻 보기에는 시클로를 운전하기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운전은 운전자가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동력을 만들어 내며 핸들 대신 승객의 의자에 함께 달려 있는 두 바퀴를 움직여 방향을 조정하며 브레이크는 뒷바퀴에 따로 달려 있어 손으로 당겨야 한다. 이런 복잡한 조정 때문에 사람을 태운 시클로는 부드러우면서도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시클로의 앞좌석에 승객을 여럿 태운 경우는 그 속도가 점차 느려진다. 달리는 것보다 세우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s31572.jpg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베트남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남쪽과 북쪽 지방 사이에는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역시 시클로도 북부와 남부가 형식의 차이가 있다. 북부 하노이의 시클로는 승객의자가 넓고 낮아 둘이 타기가 넉넉다. 반면에 남쪽 호치만의 시클로는 의자가 높고 좁아 둘이 타는 경우에는 무릎 위에 앉아야 한다.

5월부터 시작되는 우기에는 장대비와 싸워야 하고 사철 그 열기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남국의 태양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달려야 하는 시클로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이들의 대부분은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척박한 농촌의 현실을 피해 도시로 흘러들어온 사람들과 베트남 전쟁 이전 월남 관료들이었다가 도시천민계급으로 전락된 사람들이다. 여기에 1978년 12월에 일으킨 캄보디아 침략전쟁과 1979년 2월 벌어진 중국과의 중월전쟁에 동원되었던 수 십만 명의 군인이 1980년 도이모이(대외개방정책)과 함께 전역되면서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되어 이들 중 상당수가 시클로를 운전하게 되었다.

시클로 요금은 물론 거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이 탈 경우 웬만한 거리는 보통 우리 돈으로 250원 정도 받는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고무줄 요금이다. 때문에 시클로를 탈 경우 사전 가격 흥정은 필수다. 보통 외국에서 들어 온 관광객을 태우고 시내의 명소를 한 시간 정도 일주하면 2,000원~3,000원 정도 주면된다. 그렇지만 시클로 특유의 여유와 친절한 안내를 즐기고 난 후 숨을 몰아쉬는 시클로 운전자의 얼굴을 보게 되면 약간의 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s41573.jpg 이렇듯 힘든 생활을 하는 시클로 운전자들의 수입은 하루에 2,000원 정도. 한 달을 꼬박 일하면 60,000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게 되는데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시클로 사업자에게 임대료로 내야 한다. 시클로 사업자는 대부분 그 지역 마피아들인데 보통 한 사람이 15~20대 정도를 보유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임대를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척박한 현실은 유명한 베트남 영화 '시클로'를 통해 느낄 수 있다. 1995년 프랑스와 베트남의 합작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그린 파파야 향기(The Scent of Green Papaya)로 칸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세자르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베트남 출신 감독 트란 안 훙(Tran Anh Hung)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그 해 제52회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일명 시클로 보이로 통하는 18세의 베트남 소년은 호치민 시의 빈민구역에서 빌린 시클로를 운전하여 할아버지, 누나, 여동생과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유일한 생계수단인 시클로를 건달들에게 빼앗기자, 시클로 주인은 대여료 대신 자신의 갱 조직에서 일할 것을 요구한다. 소년은 마지못해 주인의 요구를 수락하지만 손쉽게 돈을 얻게 되자 점점 범죄세계로 빠져든다. 갱 조직의 일원인 시인은 소년의 누나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매춘을 알선한다. 소년의 누나는 매춘을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따뜻하게 시인을 감싸 안는다.

어느 날 꿈속에서 죽은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본 소년은 조직에서 몸을 빼려고 하고 시인은 자신의 주선으로 소년의 누나가 순결을 잃게 되자 고통을 못 이기고 화염 속으로 뛰어든다. 시클로를 운전하는 빈민층 소년의 눈을 통하여 현대화에 가려진 베트남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자국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하여 베트남 정부로부터 상영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s51574.jpg 아직도 관광객들에게는 베트남 여행에서 한 번 쯤 경험해야 할 특별한 이벤트 코스로 인식되고 있는 시클로를 탈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 우선 요금 흥정이다. 물론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아라비아 숫자는 세계 공통이므로 백지와 펜을 준비해 요금을 적어가며 협상한다. 그 이유는 탈 때와 내릴 때 요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그 증거로 들이밀 수 있어 유용하다. 흥정 없이 올라탔다가는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쓰기 십상이다.

만약 흥정을 제대로 하고도 내릴 때 요금 문제 때문에 다툼이 생길 경우 절대 흥분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목소리가 큰 사람이 유리하다지만 베트남에서는 그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언성을 높여 싸움을 하면 금방 주변을 베트남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거리가 되고 실제로 집단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점잖게 공안(경찰)을 불러 달라고 하거나 요금을 낼 수 없으니 처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가자고 하면 정상가격으로 내려간다.

그리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가끔 시클로 운전자들이 마사지 클럽이나 가라오케를 소개하겠다거나 대마초를 파는 곳을 소개하겠다는 은밀한 제의를 하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라도 이런 제의를 일거에 거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만약 호기심 때문에 이들을 따라갔다가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s61575.jpg 마지막으로 시클로의 현주소를 한 번 살펴보자. 베트남 전쟁 당시 호치민(그 당시 사이공)市에는 3,000대 가량의 시클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10배인 30,000대 가량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도이모이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1986년부터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주로 타게 되었고 메터기를 사용하는 쾌적한 택시가 도입되면서 베트남의 교통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지금 베트남의 시클로는 본격적인 교통수단 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의 호기심 어린 나들이 수단이나 노약자의 느긋한 이동 수단 정도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베트남의 다양한 얼굴 가운데 아직도 간판으로 자리하고 있는 시클로는 영화 시클로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의 에너지의 한 끝으로 표현되고 있다. 확실히 시클로는 베트남 거리의 역동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베트남에 갈 기회가 되면 한 번 정도는 시클로를 타고 베트남 거리를 둘러 보자.  펌 글(출처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