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통일궁 뒷쪽 우측 3구 Nguyen Thi Minh Khai(1구와 3구 경계) 거리에 있는 Lê Quý Đôn 학교(레꾸이돈 중고교)에는 베트남의 근현대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이 학교의 출신으로는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국왕(1922~2004년)을 비롯한 많은 저명 인사들이 있다.
프랑스가 코친 차이나(베트남 사이공을 중심으로한 남부)를 식민지화하며, 코친 차이나 총독부는 프랑스인 자녀들 교육 때문에 사이공에 학교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1874년 착공돼 1877년에 완성한 것이 현재의 레꾸이돈 학교의 전신으로 2년 후면 개교 140주년을 맞게 된다.
당초의 이름이 "Native College"였으나 나중에 프랑스의 후작의 이름을 따"샤스루-로바(Chasseloup-Laubat)학교"로 변경되었다.
20세기 초에 프랑스 국적을 가진 베트남인 자녀들도 받아들이게 됐지만 학교는 프랑스인용과 베트남인용으로 나뉘어 있었다. 다만 학습 내용은 프랑스 본국과 마찬가지였다. 호치민시 문화 체육 관광국 유적 보존 센터는 학교가 베트남인에게 문호를 연 이유에 대해 식민지 지배에 필요한 통역과 서기 등의 육성이나, 프랑스어, 프랑스 문화의 보급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교명은 1954년에 "Jean-Jacques Rousseau 학교"로 변경되었다. 요즘에는 프랑스인이 관리하며 주로 베트남인을 교육하는 학교였던 것을 1970년이 되어 베트남인이 관리하는 "레꾸이돈 교육 센터"로 1977년에는 중학교와 고등 학교로 분할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고교의 자료실에는 이 학교 출신 인사들의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시아누크 국왕, 문화 학자 Vương Hồng Sển 씨, 역사학자 Trần Văn Giàu 씨, 음악가의 Trịnh Công Sơn씨, 천체 물리학자 Trinh Xuan Thuan 씨 등.
부지 내에는 식민지 시대의 시설물들과 외국인 자녀들이 배웠던 낡은 교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당시 외국인과 베트남인은 따로 배우는데 쉬는 시간에는 자유롭게 교류했다. Trần Văn Giàu 씨는 살아 있을 때에, 14세 때 1년 동안 이곳에서 배우던 시아누크 국왕과 필기 노트의 비교 확인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시아누크 국왕은 2009년 방월 때 고등 학교를 다시 방문해 기념 식수를 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상태가 악화되어 실현되지 못한 채 사망했다.그 후에 캄보디아 대사관이 고등 학교에 증정한 기념비는 식수를 예정했던 장소에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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