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세기 전 농부에 의해 우연하게 파헤쳐진 수백년 전에 죽은 베트남 고대왕의 미이라 시신이 마침내 다시 편안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재입관식은 수 십년 동안 레 두 통(Le Du Tong) 왕의 시신을 보존해온 하노이의 베트남역사박물관(Vietnam Museum of History)에서 거행되었으며,용으로 장식된 빨간 천으로 덮힌 관이 베트남 국가방송을 통해 중계되었다.
짙은 색의 유니폼을 입은 군경들이 관 주위에 700kg에 달하는 향을 피우고,20벌이 넘는 왕의 복식이 왕과 함께 묻혔다.
“우리는 이 의식이 거행되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레 부족 대표인 레 반 두앗은 말했다. “이것은 레 가문의 몇 세대에 걸친 염원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 국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베트남 뉴스에 따르면 왕의 관은1958년 농부들이 밭을 갈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 그들은 “바깥 관”을 발견했고, 그 모서리 부분을 부서뜨리자 금으로 모서리를 두른 붉게 옻칠이 된 관이 있었다고 전했다.
박물관에서 의식이 끝난 후 1731년 사망한 왕의 시신은 적어도 100대의 차량이 호위를 하며 장지인 탄 호아(Thanh Hoa) 지방으로 옮겨졌다. 수천명의사람들이 탄 호아에서 장례행렬을 맞이했다.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1964년 처음 왕의 목관을 열었다. 왕의 관에는 베개, 옷, 식기와 보자기 등을 포함해 83가지 물건들이 함께 수장되어 있었으며, 당시 모두 부패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시신은 “발견 당시 베트남의 예산과 기술부족으로” 본래의상태 그대로유지될 수는없었지만 1964년이래로 시신
전반적으로 큰 손상은 없다고 역사박물관측은 말했다. 또한, “이 왕의 시신은 베트남 봉건주의 시대 왕 중 유일하게 발굴․연구된 사례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레 두 통 왕은 1705년 레 왕조의 22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레 왕조는 1427년 레 로이(Le Loi)가 중국 본토의 침입자들을 물리치면서 성립되었다. 레 두 통왕이 52세가 되어 죽음에 이르렀을 때는 레 왕조가 쇠망할 시기에 가까웠다.
재입관식을 위해 새롭게 제작된 관은 본래의 관과 유사하게 만들었으며, 제작을 위해 옛 황제의 도시였던 후(Hue)의 예술가들을 고용하여 복식, 수의 등 개인 수장품들을 다시 만들었다.
왕의 묘지는 5,000평방미터에 이른다. 해외 언론은 의식 참가가 불허됐다. 지역 언론사에 따르면 의식이 마지막에 이르자 향로를 가득 채운 향에 불이 활활 타올랐는데, 이는 베트남인들이 믿고 있는 바와 같이 왕의 영혼이 재입관식을 재가하였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