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생의 팜·반·한(Phạm Văn Hán) 씨는 오랜 베트남 국가 주석과 총리의 머리를 잘라 왔다. 하노이 시 동다(Đống Đa)구에 살며, 젊은 시절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우연한 인연으로"국가 주석 전속 이발사"로 발탁됐다.
19살 때, 한씨는 동북부 백 칸(Bắc Kạn)에 있는 공안 고등 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건강하고 체격이 좋은 점 등이 평가되어 호위부(현재의 호위 사령부)에서 경비원으로 채용되었다.
호위부에는 당이나 국가 지도자, 해외 요인등의 호위 및 이발 임무를 담당하는 부대가 있다. 한씨는 이발에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쪽으로 발탁됐다. 그 후 2년간 일하면서 경비원의 일도 맡고, 이발 기술을 연마해 팜반동( Phạm Văn Đồng) 총리부터 별실에 불려가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것은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이었습니다. 동수상의 머리를 자른 뒤 마음에 들지 어떨지 아절부절 하여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뒤 2층에서 내려온 총리는 웃으면서 내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총리의 친근한 모습이 나의 긴장을 풀어 준 것입니다"
머리를 자르고 있을 때, 동 총리는 고향, 가족, 사회 등 이것저것 많은 질문을 이발사에게 던졌다. 어떤 때는 이런 대화도 있었다 "부모님은 가축들을 많이 키우고 있나..? " 한 씨는 "저의 가족은 곧 새끼를 낳을 돼지 1마리와 닭을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놀랍게도 다음에 만났을 때, 수상은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으며,"자네 집 돼지는 몇 마리의 새끼를 낳겠나?" 이렇게 묻었다고 한다.
동수상 다음, 한 씨는 동득탕( Tôn Đức Thắng)국가 주석의 머리를 담당했다. 주석은 무척 평온하고 동포들을 위해 매우 걱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비 오는 날의 일입니다. 주석의 머리를 자를 때, 주석은 찌푸린 하늘을 올려다 보고 걱정스러운 모정으로 이런 날씨에서는 물이 범란하고 홍수가 일어나 식량이 부족할 거라고 걱정하곤 하였습니다"
주석의 신뢰를 받은 한씨는 그 후에도 이발 할 때마다 불리어 갔다."만년의 주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피로해 고령으로 체력도 쇠약해져 걷는 일도 여의치 않은 상태에서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머리 손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셨죠. 머리를 자를 때는 누가 도와 줘 몸을 회전시키거나 일으키고, 머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의 이발에는 시간에 제약이 있었다. 레즈앙(Lê Duẩn) 위원장이나 보응웬얍( Võ Nguyên Giáp)대장은 항상 바빠 "10분내로 잘라 줘!"라고 재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응웬민치엣(Nguyễn Minh Triết) 국가 주석만은 좀 너그러웠다고 한다. "25분 정도 내로 이발을 해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용감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국무에 전 국민 앞에 서는 것입니다. 최고의 스타일로 하고 싶은데 35분 주시겠습니까?" 그러면 주석은 부드럽게 수긍 하면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1970년부터 40년 이상에 걸친 많은 지도자의 머리를 담당해 왔다. 잊지 못할 만남과 이별이 있었다. 지금은 한씨 자신도 은퇴하고 머리를 깎은 상대는 친구나 가족 밖에 안 되지만 예전에 쓰던 도구 한벌은 기념으로 남겨 두었다.
현재도 호위 사령부에 근무하고 있는 옛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한 씨는 무수한 지도자의 머리를 잘라 왔습니다. 왜 그가 40년 동안 총리와 국가 주석의 이발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인가 하면, 하나는 솜씨가 좋았던 것과 이 일이 천직이라고도 할 정도로 인연이 강했던 거죠"
- 발췌 번역 / 정리 - ⓒ 비나한인 http://www.vinahanin.com